국밥 한 그릇의 행복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도 ‘해고’라는 극단적 칼부림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당사자는 외롭고 막막할 것이다. 조치원 신흥 사거리에서 ‘무봉리 순대’를 운영하는 임선호 회원은 한국 노동운동사의 이정표를 쌓았던 원풍모방 해고 노동자 출신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초심은 지금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가 있는 곳이면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얼마전 원풍모방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대표적인 기타 제조업체로 7년간 농성을 벌이고 있는 콜택악기 노조를 지지 방문했고, 콜택악기 노동자들을 위한 기타리스트 신대철 씨의 공연에도 다녀왔다. 사람에 대한 무한애정은 음식에도 그래도 묻어난다. ‘무봉리 순대’에 가면 따뜻하고 구수하고 진한 국밥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진국이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 ‘참’, 임선호 : ‘임’, 장인국 : ‘장’)
참) 지금 하고 계신 일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임) 보시는 바와 같이 무봉리 토종 순대국이란 국밥가게을 운영하고 있다.
참)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오신 것 같다?
임) 무봉리 토종 순대국이 10년 되었고, 인천에서 조치원으로 내려와서 횟집을 열면서 음식 장사를 시작해 18년째 식당을 해오고 있다.
참) 18년 전 어떤 연고로 조치원에 오시게 된건지?
임) 바깥 분 고향이 연서면 고복리이다. 동생과 함께 횟집을 차려보자고 의기투합해서 인천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참) 무봉리 토종 순대국을 운영 하시는데 원칙이나 방침이 있다면?
장) 항상 최선을 다하고 원칙을 지키고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침은 없다.
참) 국물이 진하고 맛있기로 유명한데
장)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골 고아내는 시간을 엄수하며 정성을 다해서 끓이는 것이다.
참) 가족단위 손님들도 많으시던데 비결이라면?
장) 가게가 청결하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며 손님을 먼저 생각한다는 정신으로 서비스에 임하고 있다.
참) 따로 즐기는 여가생활이 있다면?
장) 걷기, 집에서 간단한 맨손체조, 자전거도 타고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있다.
임) 가끔 뜨개질 하긴 하지만 취미랄 건 못되고, 쉬는 날도 없이 시장과 가게를 오가는 것 외엔 별다른 취미 활동이 없다. 이전의 원풍모방 노조 모임에 참석하고, 그 때 노조원들과 교류하는 것이 삶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참) 원풍모방 노조 활동으로 민주화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원풍모방에 언제 입사하셔서 어떤 일을 하셨나 ?
임) 75년도 16세의 나이로 입사해서 82년까지 활동했고, 그해 9월 27일 해고되었다. 추석 때 단식 농성 3일째 중 경찰들의 진압으로 끌려나오고 해고당했다.
참) 해고 후 이렇게 명예회복하고 보상받기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나?
임) 결혼하기 전 82년 해고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취직도 못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더부살이 하기도 했다. 정식 취업으로 회사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가사 도우미도 하고 지내며 힘들게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려운 환경의 돌파구로써 결혼을 결정한 것 같기도 하다.(웃음)
참) 결혼을 결정할 때 아내분의 노조활동 전력 때문에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장) 솔직히 몰랐다. 결혼 하고나서 아내의 노조 활동과 블랙리스트 등재 등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한참 있다가 알았어!(웃음)
임) 82년도 해고당하고 그 때 부터 정기 모임을 하는데 남편이 항상 참석할 수 있도록 보내주고 그래서 30년 동안 한 번도 안빠지고 모임에 갔다. 당시 노조원 중에 더러는 노조 활동 전력 때문에 이혼을 당한 사람들도 있는 편인데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남편이 늘 고맙다.
참) 원풍 노조는 70년대 전설적인 노조로 지금도 노조 지원 활동을 벌이고 계신다고 들었다. 최근 다녀오신 현장은?
임) 콜트 악기라는 곳이다. 기타 만드는 공장인데 인건비가 비싸다고 외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반강제로 직원들을 해고해서 160여 건의 공판을 7년 동안 진행하며 천막 투쟁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콜트 악기에서 만든 일렉트릭 기타를 애용하는 유명 기타리스트 신대철 씨의 콜트 악기 노조를 지원하는 홍대 콘서트에도 아들과 함께 다녀왔다.
참)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와 회원님들께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임,장) 잘들 하고 있을텐데. 댓글 사건 집회 같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고, 야당도 잘못하면 혼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집회라도 하면서 토론도 자주하면 좋고, 특히나 환경에 대해서도 청사나 첫마을 지역뿐 아니라 세종시 전 지역을 담당할 수 있는 환경 개선이라던가, 도로의 주차 문제라던가 그런 것을 꼼꼼하게 챙기는 세종참여연대였으면 좋겠다. 세종참여연대로 모인 시민들의 힘과 의견으로 세종시가 깨끗하고 살기 좋은 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한국 노동조합의 전설 ‘원풍모방 노동조합’
원풍노조는 전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돼 단체행동이 일절 금지된 72년, 파업농성을 통해 민주노조를 출범시켰다.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한 74년에는 노조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여 한국전쟁 이후 초유의 사례를 만들며 회사 정상화에 기여했다. 1980년 5월말 광주의 희생자들을 위해 원풍모방 노조원 1,700명은 4백 70만원을 모아 6월 초 광주의 윤공희 대주교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 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했다. 실질적인 최고통치기구였던 국보위는 8월 이른바 ‘노동계 정화조치’를 단행했고, 청계피복·반도상사·콘트롤데이타·원풍모방 등 유신정권 아래서도 살아남았던 민주노조의 핵심간부들이 대거 현장에서 쫓겨났다.
엄혹한 시기 70년대 노조 활동을 대표했던 원풍모방은 80년대 대중적인 노동운동이 태동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또한 30년이라는 지난한 세월이 흘러 원풍모직 해고자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으며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무봉리토종순대국 전화: 044-862-0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