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탐방] - 이영선 회원

법은 약자를 위해 변호사는 사회를 위해.


- 이영선  


Q. 세종참여연대에 함께하게 되신 계기는?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시민들이 사회나 정치 시스템 운영에 참여해서 견제와 협조를 동시에 한다는 것에 굉장히 공감해요. 제가 30살에서 36살까지 고시공부를 하면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보니 사회에 굉장히 빚을 지는 기분을 많이 느꼈어요. 봉사라던지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시민활동, 그 중에서도 참여연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호사를 대전에서 시작하면서 대전참여연대를 먼저 가입했는데, 세종참여연대가 3년 전에 창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종은 나의 고향인 만큼 뗄 수 없는 곳이고, 고향의 시민운동가, 시민단체에 참여를 해서 힘을 좀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가입을 했지요. 


Q. 변호사라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스무 살까지는 매우 모범적인 학생으로 살다가, 대학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시작했어요. 제가 90학번인데 노태우정권 말기로 군사정권, 폭압적인 통치 시기였지요. 91년 6월에 제가 다니던 한국외대에 정원식 총리가 강의를 하러 왔는데, 교육부 장관시절 전교조 창립 회원들을 해직을 시키는 등 탄압에 앞장섰던 이의 강의는 들을 수 없다고 재학생들이 반대하는 와중에 총리에게 밀가루와 계란을 던졌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현장에 가담을 했어요. 그 사건 이후 경찰에서 대대적으로 대학생들을 구속을 했고, 저에게도 구속영장이 발급되고 도피를 했던 경험이 있지요. 제가 더 충격을 받았던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이 학생들의 항의에 대한 이유보다는 일어난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 학생운동을 매도하고 비난하는 보도를 했다는 것이에요. 정당한 항의의 표시가 매도되고, 본질이 감춰지고 보수권력에 의해 꾸며진 의도대로 사회가 흘러가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때 국가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정의. 개인으로는 인권과 복지. 이런 분야가 더욱 커져야 우리나라가 균형이 맞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법대 출신이 아니신데 사법고시를 준비하시게 된 계기는?

 제가 사실은 꿈이 기자였어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그릇된 언론의 실태와 학생운동 탄압에 대한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중에서도 방송기자를 하고 싶었는데… 화면이 잘 받는 얼굴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요.(웃음) 그래서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군대 제대하고서 공사장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미국에도 갔다왔어요. 그런데 대학교 졸업 직후 IMF가 터졌어요. 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도 줄어들어 기자도 안 뽑더라구요. 결국 포기하고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2년 정도 했어요. 그 2년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이익은 기업이 취하고, 소중한 인력인 직원들은 이용의 수단으로서 착취당하는 대기업과 대한민국의 조직문화에 실망을 느꼈어요. 그래서 ‘편하게 살기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자.’라고 결심하고선 30살에 사직서를 냈어요. 편하긴 하지만 삶 자체가 무미건조한 대기업의 조직생활 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사회정의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서 힘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동안 번 돈 천만 원을 딱 들고 바로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어요. 

공부를 시작한 나이도 많고 스웨덴어를 전공한 입장으로서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죠. 그래도 그때는 아직 젊어서 그런가 뭐든 자신감이 있었어요. 내가 법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붙는 것도 다 사람이 다 붙는 건데, 죽도록 하면 3~4년 안에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딱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공부만 했지요. 그렇게 6년이란 시간을 보냈어요. 너무 힘들어 좌절도 많이 했어요.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죄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공부만 하더라구요.(웃음)  


Q. 사법고시 준비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제가 공부 시작한지 3년 만인 2002년에 1차 시험 합격을 했어요. 6월에 있을 2차 시험만 합격하면 제가 꿈꿨던 3년만의 합격이 막 현실이 되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온거죠. 근데 2002년에 16대 대선이 있었어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그 이유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지금의 권위주의를 깰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보수언론들의 탄압 때문에 오히려 시민들이 노사모 활동을 통해 자발적으로 돕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발적으로 한 시초가 노사모운동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2차 시험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나, 아니면 뛰쳐나가서 지지운동을 할 것이냐. 그 갈림길에서 결국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접고 노사모활동을 했지요. 결국 그 해는 합격을 못하고 4년이 더 걸린 2006년에야 합격을 했어요. 후회를 안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오래걸리긴 했지만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대전에서 사법연수원 생활을 2년 동안 한 후, 2009년에 대전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Q. 판사 검사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하신 이유를 들려주세요.

저는 처음부터 변호사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사법연수원에서 검사 판사 역할을 다 해보면서 느낀 것이, 판검사도 조직사회의 일종이더라구요. 내가 판사로서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고 싶어도, 내가 검사로서 아무리 진보적인 수사를 하고싶어도 위로 층층히 쌓인 조직에서 통제 검열이 된다는 거죠. 조직이나 누군가에게 연연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변호사라고 생각했어요. 또한 변호사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신뢰를 받는 직업이거든요. 변호사가 거짓말을 하겠어? 라는 사회적 인식과 신뢰도를 가진 채 사회 활동을 하면 매우 플러스 요인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를 시작했습니다.


Q. 법률가가 생각하는 변호사가 사회참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변호사를 개인적인 성취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변호사는 국가적으로 많은 특혜를 받아요. 변호사는 세무사, 법무사, 변리사, 회계사 등등의 일을 모두 할 수 있지만, 그 다른 직업이 변호사의 일을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 특혜와 권한을 많이 갖는 만큼 사회에 참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물의 세계는 강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다는 규칙밖에 없어요. 인간들도 분명히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겠지요. 가진자와 못 가진자, 힘이 쌘 사람과 힘이 약한 사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으니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강한자들은 제제를 걸고 약한자들을 보조해서 다 같이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 법이 있는거에요. 제 생각에 법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약자 보호’라고 봅니다. 당연히 법의 취지가 약자보호라고 한다면, 법을 분석하고 다루는 사람인 변호사는 평등사회를 이루는 것에 그 소임을 다할 책임이 있고, 그렇기에 사회참여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아는 변호사를 찾아가는 거구요.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한 세종시민을 위한 무료법률상담제도가 있어요. 매주 수요일 한솔동 주민 센터에서 상담소 운영을 하고 있어요. 세종시청 홈페이지에서 상담예약을 해서 법률상담과 세무상담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Q. 세종참여연대에 바라는 점은?

사람들에게 세종참여연대에 대해서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뭐하는 단체인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특성화된 중점 사업을 좀 연구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시민을 위한 강좌나 부정부패, 예산을 남용하고 있는 시정에 대한 견제. 이런 일에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종시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세종참여연대가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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