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탐방] 홍 철 회원



행복을 싣고 달립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굴곡은 있겠지만, 진정으로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이웃들을 둘러볼 줄 알고 그들에게 힘을 나눠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치원 성당 맞은편에서 홍자매 식당을 운영하면서 성당의 여러 일을 맡아보고 있는 홍철 회원은 그동안 겪어온 삶의 고난에 지지 않은 여전히 소년다운 웃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람의 선의를 믿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정의로운 소년이 마음속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의 버스를 운전할 땐 천진한 아이들과 즐겁게 눈높이를 맞추지만, 남을 깔아뭉개려는 이기적인 시선에는 단호히 저항하는 용기를 지닌 그는 오늘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눠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편집자-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부산이 고향이고 82년도에 직장을 연기군에서 다니게 되면서 올라와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된 것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지금은 조치원 천주교 성당에서 성모유치원 버스 운전기사와 성당 전체 관리장을 맡고 있고, 성당 맞은편에 홍자매 식당 이라는 보리밥과 칼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에 가입하게 되신 계기는?

젊었을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선 변호사 출신일 때 같은 조기축구회에 있으면서 대화도 몇 번 나누었고, 민주당의 선거운동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세종시가 생기기 전부터 대동조기축구회 활동을 20여 년간 했는데, 축구만 하고 식사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에 부족함을 느끼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년소녀 가장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불우이웃에 연탄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체계적이고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해나갈 단체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때마침 참여연대 사무실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 옆으로 이사를 왔고, 회원 가입서를 보니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고, 정부 보조금 없이 투명하게 운영된다는 점이 맘에 들어서 가입하게 되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좀 들려주신다면?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이 어려워져 울산에 이사를 가야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재혼하신 어머님 아래서 구두닦이나 넝마주이를 해서 학교를 다녀야 할 만큼 어렵게 살았다. 젊었을 때는 성격도 불같고 몸집도 좋고 운동을 잘해서 젊은 혈기에 사고를 치고 다니다보니 집에서 빨리 결혼을 시키려고 선을 세 번 봤는데, 그것이 싫어서 결국 집에서 도망 나왔다. 74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는데, 그때는 운전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적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서 헤매다가 전라도 여수까지 가게 되었다. 경상도 출신이라고 취직하기도 힘들었는데, 마침 고용해 주신 사장님께서 지금의 아내를 소개해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서 거절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장님이 4시간이나 배를 타고 들어 가야되는 섬마을에 날 데려가셨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걸어가는 한 처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는데, 그 사람이 마침 사장님이 소개해주려던 분이었다. 그렇지만 고향이 다르다고 장인어른이 반대하셔서, 그 섬에서 4일간 머물면서 하루에 세 번씩 문안인사를 가고 처남의 일을 도와주는 등 열심히 노력했더니, 4일 째 돼서 점심 문안인사를 가니까 현관문을 열어주시더라. 그렇게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그 후로 화물차 운전을 생업으로 삼고 연기군에 있는 공장과 계약이 되어 세종시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화물차 운전도 했고, 버스운전도 10여년 정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는 홍자매 식당을 운영하고, 나는 성당의 공무를 맡아보면서, 성당 유치원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유치원 버스를 운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화물차며 버스며 큰 차 운전을 오래하다 보니 유치원 버스를 운전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오히려 5~7세의 어린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친하게 지내다보니 젊어지는 기분이다. 요즘엔 종종 철없다는 소리도 듣는다(웃음). 해마다 재롱잔치라고 유치원의 학예회가 있는데 그때 아이들과 같이 공연도 하고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음악과 아이들을 좋아하다보니 즐겁게 일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결혼도 일찍 했고 아내를 만나서 고생도 많이 시켰다. 40년간 신앙없이 내가 최고다하고 살아왔다. 권력이 있다는 걸 믿고 으스대는 사람을 보고 그냥 못 참는 성격이다 보니 싸움도 많이 했다.(웃음) 그러다 연기군에 올라와 살다보니 아내가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하더라. 처음엔 성당이라면 크고 멋진 건물일 거라고 생각해서 조치원에 성당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건물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 속에서 신부님, 수녀님들이 대가없이, 소리없이 남을 돕는 그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도 그렇게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유치원 버스 운전도 맡게 되고, 성당 전체관리도 맡게 되었다. 신앙은 꾸준히 짊어지고 갈 것이다.

 

버스운전을 하면서 상도 받으셨다는데?

지금은 버스기사님들이 친절하시지만, 내가 버스기사를 처음 했던 것이 15여 년 전이다. 버스기사가 되려면 3개월가량 다른 버스기사 옆에서 수습기간을 거쳐야 되는데, 그때 버스기사들이 승객들에게 너무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지역 특성상 승객들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으신데, 거동이 불편하고 짐을 많이 들고 타는 노인 분들에게 공손히 대하고 조금만 여유를 갖고 버스를 출발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직접 친절을 베풀다보니 선행운전기사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즐기는 여가생활이 있으시다면?

내가 동그란 것을 좋아해서 공으로 하는 운동이며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앞서 말했듯이 조기축구회도 꾸준히 참석했고, 12일 일정으로 자전거로 248km를 달려 충청도를 돌아보는 여행을 한 적도 있다. 인라인도 종종 탄다. 세종참여연대 탁구 소모임도 관심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그동안 참석하질 못했다. 앞으로 시간과 요일이 조정될 수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꼭 참석하고 싶다. 노래하는 것도 즐겨서 12년간 연기군 합창단에서는 베이스를 맡아서 노래했었다. 처음엔 악보를 볼 줄 몰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1년 정도 지휘자에게 레슨을 받았더니 악보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때부터 신나서 열심히 연습해서 충청남도 17개 시군에서 열리는 합창대회란 합창대회는 거의 다 참석해본 것 같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와 회원님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세종시에서 30년을 넘게 살다보니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세종시의 앞날에 대해 관심과 걱정이 많다. 특히 지금은 조치원읍에 있는 세종시청이 청사 쪽으로 이전해 버렸을 때 생겨날 조치원읍 공동화나 발전 소외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종참여연대와 회원들이 힘을 합쳐 모두가 더불어 잘살아가는 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또한 회원들이 통합할 수 있는 자리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세종참여연대의 임원이나 여러 정치적 자리에 있으신 분들에게, 임원이라고 자만하지 마시고, 밑바닥에서 어려운 이의 대변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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