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 소녀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녀는 자궁을 드러낼 만큼 처참하게 짓밟히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열여덟에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녀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아니 그녀를 받아줄 곳이 없었다. 고향도 국가도 아니었다. 스스로의 부끄러움에 세상과 담을 쌓고 한숨과 눈물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침략전쟁이 한창인 1930년대 초부터 패전을 맞은 1945년까지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전쟁터로 끌고 다니며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들고 인권을 유린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소녀와 여성들은 전쟁터에 버려지거나 목숨을 잃었으며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범죄은폐와 왜곡 등으로 인해 자존을 회복하지 못하고, 50년 이상을 침묵을 강요당한 채 고통스럽게 지내야 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전범국의 찬양, 피해국의 침묵, 국제사회의 방조라는 비겁한 카르텔로 인해 상처를 위한 씻김굿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자행됐던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난 1월 15일, 세종시에서는 작은 강연회가 열렸다. ‘세종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강연이었다. 윤미향 대표는 1992년부터 시작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사람이다.
여성에 대한 보수적 문화와 한국정부의 침묵 또는 방조로 인해 역사적으로 방치됐던 위안부 문제는 시민사회에 의해서 문제제기가 시작됐고, 그 시발점이 된 것이 ‘수요시위’이다.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할머니239명 중에서 생존해 계신 할머니는 55명으로 평균 연령도 89살에 달한다고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그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처럼 국가에 의해 철저하고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군 위안부 부인, 평화헌법의 무력화, 독도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교과서 왜곡 등은 일본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의 화려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일본정부와 극우단체는 미국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기술 내용을 왜곡하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치졸한 몸부림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유대인 600만명 학살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독일이 오늘날 유럽의 중심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한 참회가 무엇인지를 담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눈물을 보면서 지구촌은 마침내 독일에 씌워진 전범국의 멍에를 벗겨 주었다. 그런 독일은 그 뒤로도 지금껏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들을 쫓고 있고, 매년 국회 연설 등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가 사죄를 거듭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아베 총리가 참배하러 간 곳은 희생자 추모비가 아니라 A급 전범을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였다. 독일로 치자면 히틀러 묘역에 참배를 간 꼴이다. 전범을 신격화한다는 것은 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할 뜻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안부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의 출발이기도 하다. 가관인 것은 아베 총리가 얼마전 한일의원연맹 소속 한국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정치·외교 문제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정치쟁점화 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군 위안부 강제연행 부인 발언, 침략전쟁 미화 발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 말썽꾸러기가 됐던 것이 아베 총리가 아니던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한국 정부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당당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로 인해 일본이 사과와 배상에 대해 이미 해결했다는 변명의 빌미를 제공하고, 외교적 마찰 등의 이유를 들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이다.
결국은 ‘수요 시위’가 그러했듯,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수요 시위’가 24년 넘게 꾸준하게 진행되면서 유엔을 비롯한 주요 나라에게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물결을 각인시켰듯이 말이다. ‘세종 평화의 소녀상’ 건립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맥락을 같이하고, 당연히 시민들이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종시는 인구의 70% 이상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일본 침략전쟁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현장에서 성찰할 역사교육의 장소가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한 평화와 통일의 시대적 과제를 체득하는 산교육의 장소가 필요할 것이다. ‘세종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조망의 상징이 되길 기원한다.
‘세종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올해 8월 15일 제막식을 목표로 3월 중으로 시민추진위 결성총회를 열 계획이다. 2000명 이상의 시민모금단을 모집해 모금단의 이름은 소녀상 주변의 박석에 새겨 역사에 길이 남길 생각이다.
세종시는 역동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시민사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추동할만한 내적 동력은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세종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관건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