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시골구석에 내려가 사태 키웠다고?
세종시의 실체 부정하는 삼류언론의 소설쓰기
신행정수도 반대했던 기득권의 몸부림,여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나라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공포가 주는 두려움은 위험의 실재가 존재하고 객관적이어서 예측 가능하지만, 불안이라는 것은 위험의 실재가 모호하고 주관적이어서 예측 불가능하다.
불안은 합리적 이성과 비판적 성찰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극도의 불안심리 때문일까. 모 작가의 표절 논란에 맞먹는 언론의 소설쓰기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여당에서까지도 메르스 사태에 대해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와 컨트롤타워 부재를 질타하고 있는 마당에 “메르스가 세종시 탓”이라는 일부 언론의 기사가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모 언론은 「대응본부는 세종·오송에, 브리핑은 서울서…화(禍) 키운 ‘세종시 리스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스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세종시 리스크’가 지목된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발생 초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초동대응에 실패한 것이 장관과 관련 공무원이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생긴 비효율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세종시에, 질병관리본부는 충북 오송에, 언론 브리핑은 서울에서 진행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또한 다음날 「땅에 떨어진 정부 위기대응 능력, 세종시 때문 아닌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는 “장관이 주로 서울에 머물다 보니 세종시에 있는 관련 부서와 긴밀한 의사소통이 부족했다”는 취재원이 불분명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고, “실무 공무원들은 모두 한가한 ‘시골구석’에 내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세종시를 시골구석인 것처럼 폄훼하고 있다.
또 다른 모 언론은 「정부의 메르스 대응 부실서 드러나는 ‘세종시 리스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부 주요 부처의 세종시 이전 이후 첫 전국적 재난인 메르스 사태는 ‘세종시 리스크’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보여 준다”면서 “이전이 완료됐다고 체념하지 말고 근본적 재검토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결단만 한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마치 세종시를 부정하는 듯 한 논조로 메르스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이런 논리라면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커녕, 지루한 정치적 공방으로 인해 국민의 실망과 피로감만 누적되고 있는 세월호 비극도 모두 세종시 탓일 수밖에 없다.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에 따라 마땅히 이전해야 할 해양수산부의 세종시 이전이 지연되고 있지만, 해양수산부가 실질적으로는 세종청사에 입주해 있는 것부터가 아이러니이다. 지금은 해양경비안전본부로 바뀌었지만, 세월호 비극 당시에 구조를 주도했던 해양경찰청은 아직도 인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도 해양수산부는 세종시에, 해양경찰청은 인천에, 컨트롤타워가 도대체 어디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언론 브리핑은 주로 서울에서 진행됐으니 ‘세종 리스크’가 주원인이라는 단순 논리가 성립된다.
세월호도, 메르스 사태도 세종시의 비효율성 때문이라는 논리적 급변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나아가 근본적 재검토와 국가적 결단을 운운하며 세종시의 실체까지도 부정하는 이 과격한 글쓰기의 원형은 과연 무엇일까. 기승전결이라는 기본적인 글쓰기의 논법까지도 혁파(?)하는 이 해괴망측한 창조적 소설 쓰기의 뿌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기억한다. 2004년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 이후 세종시 원안 사수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행정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며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는 신행정수도에서 축소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조장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행정의 비효율성이었지만, 실상은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간 고수됐던 서울 중심의 중앙 집권주의와 수도권 집중주의에 기반한 기득권 의식의 발로였다.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의 핵심은 성문법 중심인 나라에서 불문법을 관습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서울 중심의 기득권 구조에서 제도화 된 헌법재판관들의 난센스 코미디에 불과했다. 이 기조에 일부 언론이 편승하고 확대재생산한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20세기 산업경제 시대에서 21세기 지식기반경제 시대로 급속하게 이행되고 있다. 개발독재 시대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키우기 위해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식기반 경제시대에서는 개인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경쟁력의 원천으로 부각된다.
이것을 국가구조로 제도화 한 것이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고 그 중심에 ‘세종시’가 서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도 이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일부 언론이 이러한 시대정신을 모르는 것인지, 기득권 구조에 편승하기 위해 애써 부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고 개탄스런 일이다.
세종시는 ‘완성형의 도시’가 아니라 ‘진행형의 도시’이다. 세종시는 ‘관념의 도시’가 아니라 ‘실체의 도시’이다. 세종시 출범 전 쏟아졌던 세종시에 대한 우려는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현존하는 세종시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며 소설쓰기를 양산하는 것은 전형적인 발목잡기이고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