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공무원 출퇴근 버스 예산 증액
부동산시장 교란·민간투자 심리 위축 심각
SOC예산 축소 세종시도 적용, +α 실체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 파동 당시 원안 사수를 고수하며 ‘약속의 정치인’ ‘신뢰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런 이미지는 지난 대선에서 당선의 향방을 가른 충청권 표심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보 시절에는 ‘세종시 원안 플러스알파’에 대해 수차례 약속했고, 취임 이후에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세종시였다. 박 대통령의 세종시에 대한 애정이 가볍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이것이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는 국가 중핵도시로 태어난 세종시에 대한 국정철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핵심은 이것이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연속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정부는 올해 세종청사 공무원 출퇴근 통근버스 운행에 편성된 100억 원의 예산을 모두 소진하고 조만간 예산 증액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청사관리소에 따르면 정부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출퇴근을 위해 서울 동대문·양재·사당, 경기 과천·구리, 인천 부평 등 수도권 총 33개 노선에 요일별로 통근버스 67~92대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또 인근 대전 등 세종권에도 총 11개 노선, 64대의 통근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들의 출퇴근용 버스운행을 위한 예산을 꾸준히 늘려왔다. 세종청사 입주 첫해인 지난 2012년에는 9억 5800만원을 지출했고 2013년에는 83억 9800만원을 사용했다. 올해 통근버스 운행 예산은 수도권 69억 3200만원, 세종권 30억 3100만 원 등 총 99억 63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세종청사 인근 지역의 경우 아파트와 상가, 도시형 생활주택의 공급 과잉으로 인해 부동산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출퇴근 버스 운행 예산 증액은 부동산 시장에 냉각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주택 수급의 실패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지만,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출퇴근 버스 운행은 시장논리로만 접근할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출퇴근 버스 운행은 공무원들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파동으로 인해 공공부문의 건설은 차질 없이 추진된 반면, 민간부문의 건설은 2년 동안 차질을 빚어 도시기반시설 구축의 미흡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정주여건 취약으로 인한 공무원과 입주민의 생활상의 불편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세종청사 공무의 자녀 교육과 맞벌이 문제 등 현실적인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출퇴근 버스의 운행 고착화는 막대한 혈세 낭비와 아울러 세종청사의 비효율성을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단편적으로 대처할 사안이 아니다.
특히 정부가 올해 정부부처 3단계 이전 완료를 앞두고 근본적인 대책 수립 없이 출퇴근 버스 운행이라는 임시방편에 치중하는 모습은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국가정책목표에 의해 태어난 세종시의 근본취지를 무력화하는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정부부처 이전 완료 이후 내년부터는 민간부문 투자 활성화를 통한 정주여건 개선, 자족기능 확충이 절박한 시점에서 민간부문의 투자 심리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의 세종시에 대한 졸속대책이 고위 공무원에서 일반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으로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종청사 장차관 관사의 경우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장차관 관사의 경우 국가보훈처를 제외하고 모두 ‘나홀로 관사’다. 면적은 30~40평대 규모인데 임차료는 2억 원 안팎으로 12개 부처 30명의 장차관 관사에 혈세 60억 원이 투입된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는 월 수십만 원의 관리비까지 부처 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다. 무용지물인 장차관 관사 유지를 위해 수십억 원의 국민 혈세가 줄줄이 새고 있는 셈이다.
또한 세종청사 13개 부처 장차관급 인사 30명 가운데 세종시로 주소지를 이전한 사람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포함 6명에 불과하다. 청와대나 국회 등 잦은 서울 일정 때문에 수도권 자택을 주거지로 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치더라도 명분이나 도덕적으로 볼 때 심각한 문제다.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 공무원이 세종시 입주를 꺼리는 마당에 일반 공무원이 주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정책목표에 의해 태어난 세종시의 존립기반을 공무원들이 흔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긴축재정을 펼치며 SOC(사회간접자본시설) 예산을 축소하고 있고, 세종시 건설에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세종시 건설취지에 대한 몰이해 또는 외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적절하지 않다. 세종시는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는 국가정책목표에 의해 탄생한 도시이고,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등 관계 법률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는 유일무이한 계획도시이다. 도시명에 ‘특별’이라는 이름이 명시된 곳은 ‘세종특별자치시’ ‘서울특별시’ ‘제주특별자치도’ 세 곳뿐이다. 세종시가 일반 도시와는 차별화 된 특별자치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세종시 위상에 걸맞게 세종시 조기정착을 위해 예산을 조기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청사 신청사 건립을 위한 예산 지원도 맥락을 같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 플러스알파’에 대해 수차례 약속했던 만큼, 세종시 조기정착과 정주여건 개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세종시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믿고 싶지만, 세종시에 대한 정부의 의지나 지원은 박약한 것이 사실이다. 예산 부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 관건이다. 우선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장차관들의 관사 운영이나 출퇴근 버스 운행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박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종시 원안 플러스알파’에 대한 실체를 제시해야 한다. 세종시가 위태롭다. 세종시 원안 사수를 고수했던 박 대통령의 결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한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