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대통령 대변인인 윤창중이라는 인사가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는 중에 듣도 보도 못한 추태를 저질러서 전 세계에 나라 망신을 시킨 것이 들통 난 날, 강정에서 시위 중인 여성을 경찰이 툭! 밀쳐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날, 손석희 씨가 종편 JTBC로 간다니 삼성이 얼마나 센 지를 다시 절감한 날, 바로 오늘, 영화 ‘전함 포템킨’을 보았다.
‘전함 포템킨’은 1925년에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스물일곱 살에 만든 소련 영화다.
첫 자막이 “혁명은 전쟁이다. 이제 역사상 가장 숭고하고 가장 값지며 가장 위대한 혁명이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라는 레닌의 말이 인용된 점으로 알겠지만, 이 영화는 소련의 사회주의 사상을 위한 정치 선전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오랫동안 상영 금지!
그러나, 이 영화는 이제는 흘러간 옛 소련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며 이제라도 우리가 이런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스럽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4·3, 거창, 광주 등이 스쳐 지나갔고 쌍용, 평택, 강정이 가슴을 쳤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05년, 흑해 러시아 함대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전함 포템킨호도 몰락해가는 짜르의 전제 정치 아래에서 별 수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당연히 가장 아래 계급이던 수병들은 굴욕스런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고기로 끓인 국을 거부하자 지휘관들은 이들 중 몇 명을 죽이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수병들에게 총을 겨눈 포병들, “쏘라”는 상관의 명령보다 “형제들이여, 지금 누구를 쏘려하는가”라는 수병의 호소를 받아들여 봉기가 시작되었다.
좁은 선상에서 뒤엉켜 싸우는 중에, 주동을 했던 수병 한 명이 죽게 된다. 수병들은 그 시신을 오데사 항구에 작은 천막 안에 안치한다. 이 소식이 오데사 구석구석으로 전해지고 오데사 모든 시민이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끝도 없이 모여 든다. 그들 중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도 있었다. 모든 오데사 시민이 이 억울한 죽음을 아프게 받아들이면서 포템킨 호의 수병들과 한 마음이 되고 음식을 전해 주러 수많은 배들이 돛을 높이 올려 포템킨 호를 향해 나가는 모습,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짜르는 코사크 군대를 동원해 이들을 무력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오데사의 계단’을 만나게 된다. 일렬로 주욱 서서 아무런 감정 없이 다만 총을 쏘아 대는 코사크 군대는 얼굴이 없다. 그저 총알을 품어대는 총신과 가죽 장화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비되는 장면, 포템킨 호를 향해 환호하던 시민들은 순간, 삶과 죽음을 오가며 오데사 계단을 달려 내려간다. 두 다리가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청년, 엄마가 죽고 계단을 통통통 내려가는 유모차, 총을 맞고 쓰러진 아내를 일으켜 보려고 애쓰는 노인.......... 이 영화는 무성영화다. 그래서 그 어떤 절규보다 더 크고 절박한 소리가 화면 가득 쏟아져 내려온다. 들리지 않는 총성은 끊임없이 울부짖는다. 총에 맞아 다친 아들을 안고 군대를 향해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잊지 못할 거다. 자막은 다만 “쏘지 말아요. 아이가 다쳤어요.” 라고 쓰여지지만 그 어머니의 절규는 무성영화이기에 가장 슬프고 처절하게 마음속으로 후벼 들어온다.
러시아 함대 수십 척이 포템킨을 향해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 항전을 결심하고 제 위치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포템킨! 혹시나 희망을 안고 “Join us!"를 외치며 깃발을 흔드는 그 순간, 침도 삼킬 수 없는 긴장감이 화면을 가득 덮을 때, 아~ 포신이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all for one" 외침과 함께.
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포템킨 수병들은 루마니아로 망명했고 오데사 시민 수천 명이 학살을 당했다. 1905년 실패한 이들의 혁명은 12년이 지나 1917년 성공하게 되었고, 이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을 기념하여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 소련은 지구상에 없다.
군대는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누구를 향해 쏘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가?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쓰러지며 넘어지며 도망가는 시민들, 바로 그들이 낸 세금이 그들을 향해 불을 토해 내는 이 현실이 참 슬프다.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끝없이 해대는 군대는 도저히 갈 수 없어 차라리 교도소를 택했던 젊은이들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없다. 아니 모든 군인들, 모든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이 세상살이에서, 내 삶에서 누가 주인공인가? 그건 바로 너와 나. 그런 사회를 소망하며 포템킨 호의 수병들은, 오데사의 시민들은, 모든 민중들은 죽음 앞에 당당히 나섰겠지.
언젠가 오데사 계단에 앉아 이 영화를 떠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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