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참여연대 영화 소모임에서 3일 굉장한 영화를 봤어요. 1928년에 만들어진 프랑스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의 ‘잔다르크의 수난(The Passion of Jean of Arc)'이라는 무성 영화였어요. 한때 passion이란 단어의 뜻을 잘못 해석해서 ’잔다르크의 열정‘이란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네요. 이 작품은 칼 드레이어의 마지막 무성영화이자 잔 다르크라는 인물을 다룬 가장 뛰어난 영화로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랍니다. 비평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했다고도 합니다.
흥행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이 영화는 원본 필름조차 오랫동안 분실된 상태였다가 1980년대 노르웨이의 한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어 지금 우리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다시 발견되면서 이 무성영화에 어떤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썼는지 기록이 남지 않아 리차드 아인혼의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 영화를 위해 만든 것처럼 완벽하게 맞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이 영화에서 잔 다르크 역을 맡은 배우 팔코네티는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로, 감독의 지시에 따라 아무런 분장을 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고 해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여배우는 이 영화 한 편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이 들 만큼 잔다르크의 역할을 정확하게 표현해 전달하고 있더군요. 영국군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열렬하게 자신을 변호하지만, 그녀의 몸짓과 표정은 하늘의 먼 곳을 향해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를 엄하게 심문하는 사람들도 젊은 배우가 분장을 하고 노역을 맡는 경우가 전혀 없이 그 나이에 맞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요. 재판관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잔 다르크를 법정에 세우고, 심문관들은 격렬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녀로 몰기 위해 심문을 하지요. 그렇지만 잔 다르크의 변호는 자신의 순수한 신념과 믿음을 옹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어요. 마침내 그녀의 변호인인 젊은 신부는 그녀에게 공감하여 그녀가 성처녀임을 강조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주인공 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의 표정이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촬영되었어요. 현대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표정연기에 대한 감독의 자신감을 보는 것 같아 놀라웠어요. 80여년 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었어요.
<파리에 있는 하원 도서관에는 세계사에서 가장 특별한 문서 중 하나인 잔 다르크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바로 그 재판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재판관들의 질의와 잔 다르크의 대답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기록을 읽어보면, 갑옷을 입은 그녀가 아닌 조국을 위해 죽어간 평범하고 인간적인 한 젊은 여자로서의 잔 다르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린 그리스도교 정통파 신학자들과 권세 있는 재판관들에 맞선 젊고 독실한 한 여성에 관한 경이로운 드라마의 목격자가 된다.>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한 이 영화를 통해 85년 전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칼 드레이어라는 뛰어난 거장을 감동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요 축복이라 생각했습니다.
영화 소모임을 이끌고 있는 영화 전문가 송길룡 회원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겠지요. 아쉬운 것은 참여한 회원이 너무 적어 아까운 기회를 몇 사람만 누렸다는 점입니다. 다른 주 소모임 때보다 유난히 적은 인원인 여섯 명만 모여 봤으니까요. 그래서 ‘잔다르크의 수난’ 이 영화만이라도 더 많은 회원을 모시고 다시 한 번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