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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의 매혹>(퍼온글) 일반
2013.04.16 12:47

최교진

처연한 아름다움, <지슬>의 매혹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여느 때보다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사년 전이던가? 어느 봄날, 제주 올레 축제에 갔다가 섬 바람이 온몸 깊이 스며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는 남쪽이라 서울보다 따스할 것이라고 생각해 준비 없이 떠났던 무지함 때문이었다. 걸어야 하는데 엄두조차 못 내는 내가 한심하고 가련해 보였을 것이다. 제주 사람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주어 따뜻하게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당신은 추워서 어떻게 해요, 제 잘못이니 참을게요.” 미안해하자, 그는 “우리는 맨날 제주 바람 맞아 괜찮아요. 하하하~” 하며 뭍에서 온 무지한 사람을 덥혀주었다.

제주의 이야기…눈물과 웃음으로 활짝 피어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오멸)을 보며 슬펐다, 웃었다, 신묘한 감정의 파동 속에 휘말리며 제주 바람의 날센 차가움과 따뜻한 인심이 떠오른다. 아픔과 고통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려낸 흑백 풍광의 매혹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이런 매혹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난하게 만든 독립영화는 자본 크기로 승부를 겨루는 영화시장에선 변경에 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10만 관객을 넘어 개봉관 수를 늘리고 있다는 기적 같은 즐거운 소식이 봄바람 속에 날아온다. 분단국가의 서러움과 아픔을 세계 뉴스로 마주하는 올봄, 제주 감자 <지슬>이 관객의 호응으로 활짝 피어난 것은 예술과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3만 명의 죽음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점이 또 다른 나의 무지함이다. 어쩌다 조금씩 억울한 역사적 기억을 흘려 들은 것이 전부다. 제주에 가면 많은 이들의 제삿날이 같아서 난리 굿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풍문은 아름다운 섬, 그 풍광을 즐기며 걷기 좋은 제주라는 인식 뒤에 별 흔적 없이 희미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지슬>을 깊이 응시해본다. 구름을 타고 넘실대는 흑백 풍광은 태초의 여신 설문대 할망의 품속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먼지일까, 안개일까, 뿌연 공기 속에서 땅의 형편이 하나씩 벗겨진다. 폐허 같은 집, 문이 열리면 화면 속 화면이 열린다. 한 남자와 널브러진 제기들이 65년 봉인된 주술을 깨고 그때 그 시절 삶의 형편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4‧3항쟁 영혼들…제삿밥에 목이 멘다

좁은 구덩이 속에 몸을 부대끼며 한 사람씩 숨어들면서 소개령이 소개된다.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내용이다. 소개령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몰라도 극도의 위협을 느끼기에 깊은 동굴로 숨어든다. 구덩이 속에서도 동굴 속에서도 이들의 근심은 구시렁대는 대화 속에서 살아난다. 어리숙한 고집쟁이 용필아저씨, 동굴 안내를 맡았다가 길을 못 찾아 구박을 받는 경준, 총알보다 빠르다며 자신의 ‘말다리’를 시시때때로 자랑하다 장렬하게 달리며 헌신하는 상표, 홀홀단신이기에 돼지가 전부라며 돼지 밥 주러 동굴과 집을 오가려는 순범, 노모를 동굴로 모셔 오려 안간힘을 쓰다 어머니의 참혹한 종말 속에 어머니 가슴 속에 품은 감자를 동굴로 날라 오며 할 말을 잊는 순동, 사모하는 순덕을 가슴에 품고 마을로 내려갔다 불탄 마을을 목격하는 민철... 이들의 면모가 서글퍼도 오히려 정겹게 유머코드를 타고 풀려나가는 저편에는 토벌대 군인들이 있다.

도식적 드라마 관습에 따르면 이들은 무고한 양민과 잔인한 군대, 혹은 선과 악의 대립이지만, 이 작품은 그런 도식을 넘어선다. 양민 처형 명령을 차마 따르지 못해 벌을 받는 군인, 양민을 돕다 부상한 군인, 빨갱이를 죽여야만 하는 강박에 사로잡힌 군인에게서도 가족사에 맺힌 한의 아픔이 배어 나온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깨우침을 일깨워준다. 역사의 질곡 속에 허우적대는 삶의 아이러니를 제사의식으로 수행하는 오멸 감독의 태도는 미학적 고귀함으로 나부낀다. 겨울바람이 거센 벌판, 바람에 날아갈 듯 한 여자가 가련하게 서 있고 그녀에게 총을 겨눈 채 마주한 군인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이런 처연한 풍광은 앙상한 나뭇가지들로 청아한 하늘을 가르는 장엄한 이미지가 되어 마음에 스며든다.

<지슬>을 아직 맛보지 못한 분들에게 상업영화 천만 이상의 매혹을 가진 이 작품의 처연한 아름다움에 빠져 보시라고 권한다.

*팁: 영화제목 뒤에 붙은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제주 4.3을 영화에 담다가 끝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고 김경률 감독을 기리는 뜻이 숨어있다.

**퍼날랐습니다. '지슬'은 '지독한 슬픔'의 준말 아니냐는 말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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